기사, 운전을 하다가 남자를 슬쩍 본다. 길이를 잘못 맨 넥타이를 보고 혀를 찬다. 더운지 땀을 닦으며
기사 덥죠? 히터가 아니라 에어컨을 켜야 할까 봐요. 겨울인데 왜 이러는지 몰라. (남자, 말 없는데) 손님은 어제 뭐 하셨어요? 크리스마스가 토요일이라 별로였죠? 예전엔 대목이었는데 손님도 없고 괜히 남들 노는 날 허탕만 쳤어요.
남자, 여전히 대꾸가 없다. 기사, 남자가 손에 든 꽃다발을 보더니
여인, 운전대에 고개를 파묻는다.
여인 나도 은호랑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었어. 시내 나가 영화도 보고 외식도 하자고 약속 했는데. 몇 번이나 미룬 원고 마감 때문에 시간을 낼 수가 없었어. 중요한 기회였고, 놓치기 싫었어. 그래서 학원 원장한테 사정까지 해가며 이미 모집이 끝난 스키 캠프에 은호를 집어넣은 거야. 하지만…… 그땐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소녀 나다. 괜찮지, 그럼. 오버 싸네. 내가 환자냐? 너, 나 없다고 재덕이랑 술판 벌인 거 아니지? 자꾸 그러면 나도 확 마셔버린다? 됐고. 너, 간만에 내 인생에 도움 좀 돼라. 차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잘 달리다가 갑자기 시동이 꺼졌어. 아, 새끼. 오버 싸지 말라고, 좀. 괜찮아, 괜찮아. 배터리엔 별 이상 없는 것 같은데……. 며칠 전에도 정비 받았다는데? 전화로 가능하겠어? 그럼 좀 있어봐. (소녀, 자동차가 있는 쪽으로 사라 진다. 잠시 뒤 먼 데서 소녀의 목소리.) 아줌마, 보닛 좀 열어봐도 돼요?
무대 어두워졌다가 밝아지면 달리는 승용차 안. 운전석에 여인이, 조수석에 소녀가 타고 있다.
남자 (겨우) 그런 일을 겪고 어떻게 운전을 하세요?
기사 이 양반, 배부른 소리 하시네. 놀면 누가 밥 먹여줘요? (사이) 회사 때려치우고 몇 년은 죽은 건지 산 건지 모르게 살았어요. 깨어 있어도 생각나고 자도 생각나고. 술로 버틴 것도 같고. 그러다 뭐 좀 이상한 버릇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꽃값 얼마 줬어 요?
남자 예?